여전히 인구정책 차원에서 낙태를 활용하는 나라들도 있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낙태의 전면 합법화와 함께 낙태 여성의 권리까지 규정하고 있다. 중국의 ‘부녀권익보장법’은 낙태수술을 하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남편은 낙태수술 후 6개월 이내에는 이혼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다. 반면 가톨릭 국가인 바티칸, 필리핀과 엘살바도르 등 일부 남미 국가들은 낙태금지만 규정할 뿐 허용규정 없이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들 일부 국가들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은 부분적 허용과 규제를 하고 있다. 대개는 기간과 사유로 규제하지만, 최근에는 임신 초기엔 임부의 요청에 따라 사유를 묻지 않고 낙태를 허용하는 입법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태아의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기간 동안의 낙태는 허용하는 것이다. 다수의 국가들은 그 기간을 12~14주로 하고, 스웨덴은 18주까지로 규정한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도 14주 이내엔 사유를 불문하고 임신중절을 할 수 있다. 초기를 넘긴 이후엔 사유를 따지는 경우가 많다.
규제입법은 안전한 낙태를 돕기 위해 절차를 통제하거나 수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의 범위를 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무작정 허용적인 건 아니다. 형법적 규제가 아닌 여러 가지 사회적 규제장치를 두고 있다. 낙태 상담을 의무화해 낙태를 할 경우와 하지 않을 경우의 지원책 등 각종 사회복지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상담 후 일정 기간의 숙려기간을 갖도록 하는 등의 방법이다.
국가별 중절수술 제한
독일은 임신 14주 이전에는 수술 3일 전까지 ‘임신갈등상담소’의 상담을 거치고, 상담확인서를 받아 제출해야 한다. 네덜란드도 여성의 요청에 의한 임신중절을 허용하지만 상담 후 5일의 숙려기간을 거치는 절차를 위반하면 처벌한다. 또 우리나라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 동의’는 대부분 나라에서 폐기되고 있다.
낙태에 대한 세계적 반응
낙태에 대한 윤리적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배우자에게 임신중절 사실을 고지할 의무를 두었던 펜실베이니아 법을 위헌으로 판결하기도 했다. 많은 나라들이 낙태의 문제를 인구 문제가 아닌 여성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국제사회 기준에 따라 입법례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의 출산 조절로 인구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이제 별로 통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 국 중 22개 국이 임부가 원하면 낙태를 할 수 있지만 이들 국가의 출산율(2011년 기준)은 1.3~2.2%로 한국(1.2%)보다 높다. 낙태죄의 유지가 저출산 대책 사유가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